해파리 팀 🪼
해파리 팀은 지난주에 해파리라는 상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박건영 님은 귀여운 낙서 한 장으로 지난 주의 대화를 상기해 주셨다.
지난주 아카이브가 올라간 직후에는 우창효 님께서 자작시 한 편을 공유해 주셨다. 팅이 내준 글쓰기 과제라고 말씀하셨다.
해파리가 전하는 말
“투명한 몸은 / 약해서가 아니라 / 세상의 빛을 모두 품기 위해 / 비워 둔 마음이었다.” 팅은 이 구절을 보고 ‘흔적’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파리는 투명하다. 그렇기에 온갖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 팅은 이러한 역설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 바로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팅에 의하면 흔적이란 그 자체로 역설적인 개념이다. 흔적은 무언가가 있다가 없어졌음을 나타내면서도, 없어진 것이 어떤 식으로든 남겨졌음을 의미한다. 즉, 흔적이란 어떤 존재가 부재하게 되었음을 확인시키는 표지이다. 팅은 흔적에 관하여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의 이론을 빌려 설명해 주었다.
아까 잠깐 말씀드린 쟈크 데리다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어요.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1967)에서 서구 철학이 오랫동안 ’현존(presence)’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아왔다고 비판합니다. 말(음성)은 화자의 의식과 직접 연결된 것처럼 여겨져 우월한 것으로, 글(문자)은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것으로 취급됐다는 거예요. 이걸 “음성중심주의(logocentrism)”라고 부릅니다.
데리다는 이 위계를 뒤집습니다. 그는 어떤 기호도, 심지어 말조차도 그 자체로 순수하게 현존하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모든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 속에서만,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것과 앞으로 올 것을 동시에 참조하면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여기’에 완전히 존재하는 의미란 없고, 언제나 부재하는 것의 자국, 자취만 남아있다는 거죠. 이걸 표현하는 용어가 바로 trace(흔적)입니다.
흔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잠깐 진행된 후에, 해파리 팀은 각자가 가진 흔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연옥 님은 개에 대한 트라우마의 흔적이 몸에 남아있어, 아직도 모르는 개를 쉽사리 만지시지 못한다고 하셨다. 성우경 님도 개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복날이 되면 반려견이 사라지곤 했던 기억은, 어떤 생명이든 키우기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남겨졌다고 한다.
박은진 님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흔적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은진 님은 두바이의 사막에서 멍 때렸던 경험을 공유해 주셨는데, 사막의 모래 위에 남는 ‘바람의 길의 흔적’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에 대해 팅은 그것이 바람의 흔적인지 아니면 모래의 흔적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대화가 조금 어려워졌었다.
이시진 님은 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 자취방의 흔적들을 숨겨야 하나 고민하셨다고 한다. 회화를 전공하신 시진 님은 만약 내가 무명으로 죽으면 내 흔적이나 다름없는 그림 작품들은 어떻게 될는지 궁금했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또, 성우경 님은 부모의 흔적은 자식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것 같았다. 한편 허은경 님은 ‘흔적 없이 흔적 남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세 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들었으므로 해파리 팀에서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다는 알지 못한다. 감사하게도 팅은 오늘의 대화를 요약해서 톡방에 공유해 주었다.
오늘 우리는 각자 남겨진, 혹은 사라진 흔적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떠올린 것들이 어떤 것에서 출발했는지 질문을 던져보며 탐색했지요. 나로부터 출발 그 의도를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고요. 다음 주에는 이 질문을 통해 발견한 것을 하고자 하는 것과 연결지어 기획서를 간단하게라도 작성해 보려 해요. 물론 해파리 세계관도 계속 확장하고요. (담주에는 줌으로 만나뵐거예요! )
소라 팀 🐚
지난주에 주성진 선생님께서 소라 팀 전원이 제시간에 출석하면 한 턱 쏘신다고 하셨는데, 놀랍게도 한 분 제외하고 전원 6시 30분까지 도착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족발과 딸기 크레페를 사주셨다.
소라 팀의 대화 주제는 여러 개였는데, 그중 하나는 ‘잔치’였다. 잔치를 열고 싶은데 껀덕지가 없어서 하나 만드는 중이었다고 보면 된다. 60살이 되면 환갑잔치를 하니까, 그전에 불혹 잔치, 지천명 잔치 같은 것들도 하면 안 되나? 그런 얘기들이 오갔다. 마침 소라 팀에는 86년생 세 분이 있었다. 이분들을 위해 불혹 잔치를 열어보자는 대화가 쭉 이어지고 있었다.
종종 ‘파티’와 ‘잔치’라는 단어가 혼용되었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파티와 잔치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질문해 주셨다. 류진선 님께서 말하길, 파티는 ‘꺼드럭’대는 느낌이라면 잔치는 ‘명절’ 느낌이다. 파티의 목적은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고, 잔치의 목적은 기쁨을 나누는 데 있다. 박상현 님의 표현으로는, 파티가 EDM이라면 잔치는 트로트다.
종잡을 수 없는 소라 팀의 대화는 ‘늙음’이라는 주제로 넘어갔다. 홍동민 님은 늙음에 대한 여러 멸칭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러한 멸칭들이 겨냥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예를 들어 요즘은 사십만 돼도 ‘영포티’라고 부른다. 자세한 설명은 최태규 님이 공유해 주신 기사로 대체한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수업 내내 소라 팀의 대화를 판서로 정리해 주셨다.
이날 수업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① 불혹 잔치, ② 몰입 경험(페이크 다큐), ③ 도파민 리딩방. ③은 지난주에 주성진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셨던 아이디어이다. ②는 요약하자면 ‘구라를 끝까지 쳐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등포에서는 남자가 40세가 되면 죽는 병이 유행 중이래’라고 소문을 내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불혹 잔치’라는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식으로 ①과 연결해 볼 수도 있다.
고사리 팀 🌿
지난 월요일, 월식 선생님께서는 고사리 팀 단톡방에 대량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월식 선생님의 아주 긴 메시지들은 아래 박스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김월식 선생님 설명 펼쳐보기
"안 해도 되는 일(What Doesn't Need Doing)"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가 끝날 때까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가족을 돌보고, 누군가는 생계를 이어가고, 누군가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먼저 연락하고, 사과하고, 정리하고, 기다립니다. 어떤 일은 돈을 받지만, 더 많은 일은 이름조차 없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너무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쯤 질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까.
누가 그것을 필요하다고 말했을까.
그 일을 멈춘다면, 정말 공동체는 무너질까.
이 프로젝트는 게으름을 배우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실험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관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익숙한 일상을 잠시 멈춰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영등포는 수많은 시간이 겹쳐 있는 도시입니다. 오래된 공장과 새로운 건물, 재개발과 오래된 골목, 이주민과 토박이, 자영업과 플랫폼 노동, 돌봄과 생계가 한 장소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갑니다. 이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많은 노동이 존재합니다. 특히 누군가의 배려와 돌봄, 관계를 이어 붙이는 감정의 노동, 행정과 절차를 감당하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도시의 틈을 메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들이 왜 특정한 사람에게 집중되는지, 왜 그것이 당연한 역할이 되었는지 자주 묻지 않습니다. 너무 오래 반복된 일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지역을 만나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대신, 하나의 일을 잠시 멈춰 보려 합니다.
먼저 사과하지 않기.
항상 내가 맡던 역할을 잠시 내려놓기.
불필요하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오던 행동을 멈춰 보기.
습관처럼 해오던 소비를 유예해 보기.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가 아닙니다. 그 작은 중단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일입니다.
누가 당황했는지.
누가 대신 그 일을 맡았는지.
무엇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무엇은 흔들렸는지.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어떤 감정이 생겨났는지.
죄책감이었는지, 해방감이었는지, 두려움이었는지, 아니면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우리는 그 경험을 함께 기록하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실패를 평가하지도, 더 나은 답을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의 경험을 통해 영등포라는 도시를 움직여 온 보이지 않는 규범과 관계의 구조를 읽어 보려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정답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질문을 오래 붙잡는 프로젝트입니다.
지역의 전환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만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순간에도 변화는 시작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의무를 잠시 멈추는 행위는, 일상을 부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감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좋은 이웃'이 무엇인지 정의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삶 속에서 정말 필요한 일과, 이제는 내려놓아도 되는 일을 함께 다시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하지만, 동시에 영등포라는 도시를 향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우리는 하나의 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앞으로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방식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작은 멈춤이 한 사람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새롭게 읽는 하나의 지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 '안 해도 되는 일'을 함께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는 투표하는 날에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매일의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절하며, 무엇을 함께 결정할 수 있는가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당연하다'는 이유로 반복합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부모와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조직과 지역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늘 해오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행동은 어느새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규범이 되고, 규범은 다시 공동체의 질서가 됩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은 바로 그 질서를 질문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일을 의식적으로 멈춰 봅니다. 그 순간 드러나는 것은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여 온 보이지 않는 구조입니다. 누가 늘 돌보고 있었는지, 누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누가 책임을 대신 떠안고 있었는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사회적 의미입니다. 보이지 않던 노동과 역할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조를 다시 읽는 일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실천입니다. 정치는 국가나 제도만이 아니라, 무엇이 의무가 되고 무엇이 선택이 되는지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왜 항상 내가 해야 하지?', '왜 이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공동체의 규칙을 다시 협의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작은 중단은 작은 저항이 아니라, 함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는 시민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학적 실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미학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는 삶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감각과 판단으로 삶의 형식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독립적으로 상상하고, 스스로 실천하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는 한 사람의 고유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가치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은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타인과 협의하며,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는 획일적인 규범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안 해도 되는 일』은 단순히 일을 줄이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는 삶의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구호보다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하는 시민만이 다른 사람의 고유한 삶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민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명령과 관성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대화와 협의, 상상과 실천으로 움직이는 사회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시민력입니다.
그리고 시민력이 문화를 바꾸는 힘이 될 때, 문화는 더 이상 소비하거나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삶의 방식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민주주의입니다.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같은 문화를 누리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상상하고 실천하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은 그 거대한 변화를 일상의 가장 작은 질문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정말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일까?"
그 질문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공동체를 바꾸며, 민주주의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첫 번째 실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하러 모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연한 일을 다시 질문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사유이며, 질문은 비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한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발견하는 순간, 공동체는 새로운 가능성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질문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하지 않음은 또 다른 시민의 실천이다.
당연함을 잠시 멈추다.
멈춤이 공동체를 다시 움직인다.
필요를 다시 묻다.
오늘, 하나를 멈추고 세상을 읽다.
좋은 시민보다 질문하는 시민.
당연한 일을 의심하는 용기.
하지 않음에도 책임이 있다.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게으름을 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불편을 주기 위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시민의 기준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방식의 실천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여를 경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답으로 공동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
우리는 질문이 변화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작은 실천이 공동체를 바꾼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민주주의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문화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의 이중적 의미에 대하여:
타인을 설득하지 않는다. 타인이 스스로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자발성을 발생시키는 조건을 만드는 것
프로젝트의 규칙
설명하지 않는다.
모집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평가하지 않는다.
기다린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오면
같이 한다.
저는 오히려 이것을 '민주주의의 빈자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가 스스로 들어오고 싶어지는 빈자리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은 바로 그 빈자리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안 해도 되는 일 → 민주주의의 빈자리 → 오지 않은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
1. 안 해도 되는 일
이것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행동의 목적은 효율이 아닙니다.
세상을 다르게 상상해 보는 아주 작은 실험입니다.
영등포를 1m 밀기.
신호등에게 안녕하기.
잡초에 물 주기.
남북통일을 위해 5초 기도하기.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감각은 바뀝니다.
2. 민주주의의 빈자리
이것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모으지 않습니다.
가르치지 않습니다.
동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빈자리를 하나 만듭니다.
누군가
"왜 저러지?"
하고 다가오는 순간
민주주의가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합의보다 먼저
호기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이 굉장히 새롭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시민참여는
참여자를 모집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프로젝트는
참여가 발생하는 조건을 디자인합니다.
이건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3. 오지 않은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
이게 가장 아름답습니다.
아카이브는 과거를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기록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를 남깁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어떤 민주주의를 잠깐 살아보았는가."
를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2027.4.15
영등포를 1m 밀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초등학생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같이 밀었다.
이건 사건이 아닙니다.
가능성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월식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내주셨다. 고사리 팀은 참 빡세게 진행되는 것 같다.
여러 참여자분들께서 장문의 과제 글을 공유해 주셨다.
박귀숙 님
안 해도 되는 일
지난 주말 새고 서림이라는 독립책방에서 ‘여름밤의 소설극장’ 공연이 있었다. 단 15명 내외의 관객만 볼 수 있었다. 공간이 좁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가까이서 배우와 성우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더 실감났다.
일본 작가의 소설들이었다. ‘나도 그런 성우의 목소리처럼 할 수는 없을까.’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 목소리의 전달이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소설에 맞게 연출된 그들의 연극같은 소설 낭독은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다섯 편의 소설 낭독이었는데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진행자는 그 소설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 주어 소설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었다.
영등포구에서 구민을 위한 문학 행사 등을 가 보면 너무 한정된 인원만 참석하는 게 더 많다. 어떤 행사에 스스로 찾아 올 수 있게 하려면 관심과 필요성이 중요할 것 같다. 그게 취향에 의해 연계되면 좋지 않을까.
얼마 전 근처 도서관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글쓰기 특강이었는데 고작 열 명 내외의 인원이 참석했다. 유명한 장애인 동화 작가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인원이었다는 게 아쉬웠다. 홍보가 부족했으리라.
우리의 프로젝트도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팀원들의 제각각의 의견으로 한 가지가 결정되면 홍보 방안도 찾아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 되어 이렇게 제안해 봅니다.
구청 건물이나 딱딱한 대강당이 아니라, 매력적인 독립책방, 동네 작은 도서관, 감성적인 카페 등과 연계하여 홍보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따뜻한 목소리로 짧은 수필 한 구절이나 초대 멘트를 녹음합니다. 가령 “잠시 귀를 쫑긋 세워보세요. 이번 주말, 당신의 지친 하루를 달래줄 비밀 소설극장이 열립니다.” 이 오디오 파일을 QR코드나 링크로 만들어 영등포 지역 맘카페, 도서관 소모임, 당근마켓 동네 생활 탭에 올립니다. 팜플렛 같은 웅성거리는 글자들 보다 목소리는 엄청난 몰입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창민 님
안 해도 되는 일들 from 창민
C'est parti!
영미권 사람들과 오래 소통하고,
프랑스에서 살다가 오니 생긴 습관이 있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인사하는 거'요.
거기서는 예절인데 여기서는 하기 싫을 때 안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안녕하세요!'에 대한 대답을 "네"로 하는 사람들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나이스해야하지 않아도 됩니다.
얘기하기 싫은 주제는 굳이 이어가지 않고 거절하고
착하게 하나하나 다 응대하고 호응하지 않기로 나에게 얘기를 걸어봅니다.
2. 완벽주의 중단
저는 요리 할 때 강박이 있습니다.
음식을 완성도 높고 섬세하게 만들고자하는 강박이요.
특히, 남에게 해주는 요리라면 그게 더 강해집니다.
같은 건물 이웃 중에 저처럼 요리를 좋아하고 또 잘하시는 이웃이 있습니다.
맛나는 전이나, 국물, 찌개 한식요리를 해주시면
저도 제가 준비하는 식단에서 제 술장에서
상황에 맞게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제 아내에게 하던 것처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김사랑 님
그때는 놀이터가 모래바닥이었는데, 저는 혼자 '보물찾기 놀이'를 한다면서 모래 속에 묻힌 쓰레기가 보물이고, 쓰레기통이 보물함이라 상상하면서 놀았습니다.
그러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재미있어 보인다며 동참했습니다.
학원 갈 시간이 된 아이들이 점점 놀이터를 빠져나갔고, 전 계속 그 놀이를 이어갔습니다. 모래안에는 다양한 보물들이 많았고 학원에서 공부하는것보다 재미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좀 지나니 놀이터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모였고, 그들은 보물을 찾는 제가 재미있다는 듯,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며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질 때쯤까지도 제가 집에 오지 않자 어머니께서 저를 찾으러 나오셨고, 딱 그 순간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언니, 오빠들을 호되게 혼내셨고 저 역시 누가 시켜서 하는거냐며 혼이 났습니다.
놀이터 관리실을 지날때,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부르시더니, 제게 잠시 기다리라며 주머니에서 다 녹아내린 몽쉘 하나를 꺼내 쥐어주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어머니가 제 행동을 많이 속상해하셨지만, 몽쉘 하나를 받았을 때 제 기분은 꽤 많이 뿌듯했습니다.
위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온 과제 내용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 남들이 버려둔 당연함 속에서 나만의 보물찾기. ( 각자가 ‘당연함’ 을 뭐라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도 공간/상황/시간 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 글쎄요.. 글의 맥락상, 효율성과 무용함을 내 잣대로 평가하지 않기..정도(지레짐작 않기)
우리가 믿는 일: 보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찾는 사람이 임자다.
열성적인 과제 참여와는 대조적으로, 수업 날 고사리 팀은 전원 지각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약간 언짢으신 기분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을 것이다. 월식 선생님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첫째, 화초보다 잡초가 많은 도시를 만들어 볼 것, 둘째, 참여자를 모으지 말 것(그 대신, 참여를 만드는 조건을 만들 것). 월식 선생님께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주시며 설명해 주셨다. ‘안 해도 되는 일’이라는 우산이 있다면 각각의 참여자들은 우산살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카톡방에서처럼 쏟아지는 많은 말씀에 월식 선생님께서도 참여자분들이 혹시 부대끼지는 않으실지 걱정해 주셨다. 그러고는 콕 집어서 창민 님께 소회를 좀 이야기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창민 님은 요즘 방어기제와 완벽주의로 애를 먹는 중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창민 님은 본인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셨다. 목적지가 없으면 운전을 못하며, 이유가 없으면 실천을 못하는, 낭만적 실용주의자. 갑자기 궁금해져서 창민 님께 여쭤보았다. 혹시 창민 님은 ‘예쁜 쓰레기’는 안 좋아하시는지? 그랬더니 창민 님께서는 단칼에, ‘네, 안 좋아해요’라고 대답해 주셨다.
오랜 논의 끝에, 드디어 이근학 님께서 월식 선생님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비둘기에게 영양제를 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영등포를 ‘비둘기가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도심의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인 비둘기에게 영양제를 주는 행위가 가지는 예술적 함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요약하자면 동물권에 대한 논의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순보 님과 이창민 님이 비둘기는 유해조수라서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월식 선생님의 강의는 더욱 길어지게 되었다. 창민 님은 근학 님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여러 법률적이며 사회적인 고민부터 떠올랐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창민은 등산 이후에 생각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좌뇌를 좀 활성화하라는 뜻이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