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팀 🌿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고사리 팀 피드백을 위해 수십 장의 PPT를 준비해 주셨다. 예술적인 방식으로 조련된 챗지피티와 함께, 거의 미학적 평론에 가까운 피드백을 마련해 주셨다.
다만 완성된 기획안이 나오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고, 아직 기획을 구상하지 못한 분들도 계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우선 기획 아이디어가 나온 분들을 위주로 피드백을 진행해 주셨다. 내가 보기에는 고사리 팀의 진행 속도(이런 걸 가늠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만)가 제일 빨라 보였다. 그러니 아직 기획안을 구성하지 못한 분들께서도 너무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걱정되신다면, 이 과정의 이름이 ‘산으로 간 배’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배가 산으로도 가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든 뭐 어떱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발칙해질 필요는 없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피드백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조언이 ‘이상한 행동을 해보자’는 뜻은 아니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멘토링의 요점은 이상한 행위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함이라는 관성을 의심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요구받아왔던 것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명령처럼 내재화된 것들. 어쩌면 그것들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100% 내던져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냐고 하면, 그 또한 적절치 못할 만큼 성급한 결론이리라. 우리의 고유성은 우리를 얽매는 것들 바깥에 있지 않다. 얽매임과 얽매이지 않음 사이에서, 우리의 고유한 위치는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언어가 있다. 우리의 사고는 항상 반드시 언어에 얽매인다. 언어는 우리의 탄생보다 먼저 주어져 있으며, 언어 속에서 개인의 고유성은 때때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 불편함은 언어를 평생 벗어던지는 식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고유함은 그 사이에서, 예를 들면, 언어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것 같은 감각을 주는 시(詩) 적 언어에서 위안을 얻곤 한다.
이런... 사족이 길었다. 이제 피드백에 대해서 적어보자.
팁을 드리자면, 이 피드백은 지난주 아카이브에서 본 고사리 팀 참여자분들의 숙제와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김사랑, 「남들이 버려둔 당연함 속에서 나만의 보물찾기」
김사랑 님의 기획은 영등포 골목골목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에 번호표 스티커를 붙여둔 뒤, 보물찾기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김월식 선생님(과 그의 숙련된 조수 ChatGPT)께서는 이 기획에 대해, 이미 판단이 끝난 사물(쓰레기)을 둘러싼 판단의 시간을 되감는다는 점에서 미학적이며 정치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윤희, 「숫자가 필요 없는 세상 (감각의 치환)」
이윤희 님의 기획은 일상 속 숫자로 이루어진 지표들을 다른 방식으로 치환해서 기록해 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걷기 운동을 할 때 ‘몇 천 보를 걸었다’ 대신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거나 ‘종아리가 뻐근했다’는 식으로 운동량을 측정해 보는 것이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이 기획에 대해 ‘자기 몸을 측정하는 새로운 단위를 발명하는 일’이며, ‘감각의 도량형’을 제시하는 기획이라고 평론해 주셨다.
박귀숙, 「완벽한 해설사가 되지 않고 목소리로 전하는 비밀 소설극장」
박귀숙 님의 기획은 ‘굳이 정치적이거나 형식적인 행사에 인원수를 채우지 않고, 완벽하고 전문적인 해설사가 되지 않으면서 재미와 낭만을 찾는 실천’이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귀숙 님의 기획에 대해 ‘서투름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기획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홍소라, 「사람들에게 AI에게 어떤 고민을 입력했는지 물어보는 일」
홍소라 님의 기획은 사람들에게 ‘AI에게 어떤 고민을 입력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2026년 현재 인류에게 매우 시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획이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요즘의 사람들이 ‘인간에게 닿지 않는 말’을 AI한테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무섭게 표현하자면 ‘돌봄과 친밀성의 외주화(外注化)’인 것이다. 소라 님의 기획은 ‘인간에게 도착하지 않은 문장들’을 수집해 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실천이 될 것이다.
이근학, 「비둘기에게 영양제 챙겨주기」
이근학 님의 기획은 영등포의 비둘기들에게 영양제를 챙겨주는 것이었다. 비둘기를 ‘돌보아’ 줌으로써, 참여자들은 ‘돌봄의 울타리’에 질문을 던지고 넓혀보게 된다. 근학 님은 ‘돌봄’에 대한 정의로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주셨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이 기획에 대해 ‘아무도 부탁하지 않는 존재의 미래를 미리 돌보는 기획’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박소연, 「밀폐된 20초, 안 해도 되는 이야기」
박소연 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잠깐 동안에 타인과 관계하지 않기 위해서 벽이나 스마트폰처럼 시선을 둘 곳을 찾는 노동(김월식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서로 관계하지 않는 노동’)에 주목하셨다. 소연 님은 견뎌내야만 하는 불편하고 어색한 순간을, 이웃과의 따듯한 인사를 나누는 다정한 순간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셨다. 소연 님은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 역시 상대에게는 뜻밖의 강요나 불편함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하여 소연 님은 인위적으로 사람을 모으거나 ‘인사합시다’라고 캠페인을 강요하는 대신,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르는 엘리베이터 벽면에 포스트잇과 스티커를 배치하는 기획을 구상하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소연 님의 기획에 대해, 친해져야 좋은 기획이라는 공동체의 강박을 멈춘다고 표현해 주셨다. 포스트잇 한 장의 여백은 ‘인사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된 공동체’를 존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소연 님의 기획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며, 이창민 님과 정순보 님께 각각 질문을 떠올렸다. 먼저, 창민 님은 (얼마나 오랜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유럽에 거주하셨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며 ‘그 옷 정말 멋지네요’ 같은 식으로 스몰 토크를 걸어온다고 한다. 따뜻한 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SNS를 하다가 이러한 스몰 토크 문화가 ‘저 이상한 사람 아녜요’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어야 하는 일종의 문화적 강박이라고 설명하는 댓글을 본 기억도 있다. 여튼, 한국이랑 유럽의 엘리베이터 풍경은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창민 님께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했다. 지난주 과제 글에서 창민 님의 유럽스러운 인사성이 한국에서 많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안녕하세요!’에 대한 대답을 ‘네’로 하는 사람들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이건 토종 한국인도 종종 상처받는 일이다. 야박한 사람들...
창민 님의 대답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현대 한국 사회의 정 없는 분위기에 대해서 많이 서운함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았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情)’이라는 말, 되게 한국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SNS에서 보았던 어떤 외국인이 한국에 거주하면서 찍은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 기억난다. 영상에서는 한 외국인 청년이 없어진 빨래를 찾고 있었다. 집안을 뒤지다 못해 청년은 밖으로 나가보았고, 앞집 할머니께서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계셨다. 그 순간 외국인 청년은 할머니의 시선을 읽어냈다. 청년의 옷들은 잘 세탁되어 빨랫줄에 널어져 있었다. 그 외국인은 이것을 정(情)이라 표현했었다.
한편, 전부터 순보 님은 적당한 친밀감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강박에 대해 ‘가식적’인 ‘방어기제’라고 느끼시며, 이러한 것들을 탈피하는 방법으로서 다소 폭력적이더라도 솔직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었다. 박소연 님의 기획이 ‘친해져야 좋은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강박’을 다루고 있다면, 정순보 님의 문제의식은 그 강박마저도 ‘적당한 친해짐’이라는 또 다른 강박 속에 시달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순보 님께 더 여쭙고 싶었지만, 오늘 정순보 님의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보여서 그러지 못했다. 건강검진을 위해 3일을 굶으신다고 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의사 선생님 말을 잘 듣냐고 질문하셨다. 순보 님은 ‘건강염려증’이 있으시며 원래 의사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소라 팀 🐚
소라 팀은 오늘 전원, 지각없는 출석에 성공했다! 그리고 호종해 님께서 지난주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케이크를 가져오셨다. 소라 팀은 호종해 님의 지난주 생일을 축하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소라 팀은 주성진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톡방에 공지는 박상현 님께서 대신해 주셨다.*저번주 아이디어 회의에서 나왔던 단어들을 활용하여 어떠한 장면을 상상해보고 설명하기
설명의 방식은 자유롭게
+ 자신에게 편한 툴로
+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상현 예시) 영등포 어디선가 어느시간대에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즉흥 잔치를 펼치는 낭만 퍼포먼스 > 꼴라주 이미지를 만들어볼까합니다
정정은 님
류진선 님
박지혁 님
김지영 님
[잔치가 없는 시대, 새로운 잔치를 만들다]
우리 사회는 점점 잔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바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며, 이웃과 함께 웃고 나누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관계는 약해졌고, 삶은 점점 불확실해졌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자는 것이다.
그 시작은 리서치였다.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왜 관계가 끊어졌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함께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만남을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의 삶을 공감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모임은 하나의 축제가 되고, 다시 지역의 잔치로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잃어버린 공동체를 회복하고, 나이와 세대를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결국 좋은 프로젝트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의미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인사이트는 아이디어를 만들고, 아이디어는 프로젝트가 되며,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홍동민 님
영등포대감의 잔칫날 –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영등포대감의 잔칫날'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가 자연스럽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먹기 위해 모인 공간이 아니라, 오래전 동네 잔칫집처럼 누구나 편하게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하루를 만드는 축제이다.
입구 한편에는 영등포 사진관이 운영된다. 전문 사진가가 가족, 친구, 연인, 이웃의 모습을 촬영해 주며, 방문객들은 준비된 배경 앞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브이(V)를 하고, 부모와 조부모는 오랜만에 함께 사진을 남긴다. 즉석에서 인화된 사진은 오늘의 기념품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행사 동안 촬영된 사진들은 행사장 한편의 전시 공간에 하나둘 걸리며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오늘의 기록'이 된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긴 테이블이 놓인 잔칫상 마당이 펼쳐진다. 커다란 전 위에서는 노릇노릇한 전이 계속 부쳐지고, 커다란 양푼에서는 잡채가 푸짐하게 담겨 사람들의 접시를 채운다. 떡과 과일, 식혜와 막걸리까지 잔칫집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음식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권하고 나누며 먹는 풍경이 이어지고, "전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지.", "잡채 더 가져가세요."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처음 만난 사람도 같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금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놀이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닥에는 커다란 윷판이 펼쳐지고 아이들과 어른이 한 팀이 되어 윷놀이를 시작한다. 윷이 던져질 때마다 "모다!", "윷이다!" 하는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승패보다 함께 웃는 시간이 더 큰 즐거움이 된다. 주변에서는 제기차기와 공기놀이, 딱지치기 같은 전통놀이도 이어져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만든다.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동네의 옛 모습, 아이들 키우던 시절, 시장이 가장 북적였던 날들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나눈다. 젊은 세대에게는 "요즘은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며 웃음을 건네고, 아이들에게는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이랑 많이 놀아." 같은 정겨운 잔소리를 한다. 이 잔소리는 꾸중이 아니라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며, 행사장을 따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버스킹 공연과 주민들의 장기자랑도 이어진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고, 아이들은 무대 앞에서 춤을 춘다.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가 잔치의 주인공이 된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가들은 이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 음식을 나누는 손길, 윷을 던지는 순간, 함께 웃는 얼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담긴다. 이 기록은 단순한 행사 사진이 아니라, 오늘 영등포에서 만들어진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
'영등포대감의 잔칫날'은 특별한 공연이나 화려한 무대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이다. 혼자 찾아온 사람도 어느새 누군가와 같은 상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은 함께 놀이를 하며 친구가 되고, 어르신들은 삶의 경험을 나누며 세대를 이어 준다. 오늘 하루만큼은 영등포 전체가 하나의 큰 잔칫집이 되어, 먹고 마시고 웃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공동체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행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현대판 동네 잔치이다. '영등포대감'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두를 상징하며,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함께 상을 차리고, 함께 웃으며, 함께 영등포의 하루를 완성한다.
호종해 님
저점매수 - 우린 구성원들의 저점인 강점을 상품화해서 팔다
상품화 - 우린 상품화 시킨 영등포 굿즈를 팔지않고 무료로 준다
최태규 님
2026 불혹(不惑) 잔치 기획안
: 명분 없는 시대에, 명분 없이 벌이는 잔치
잔치가 사라진 세상입니다.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칠순잔치가 사라지고, 이제는 팔순잔치마저 거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을 이유로 대지만, 사실은 잔치를 벌일 '명분'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도 하지 않는 잔치를, 우리는 사소한 이유로 해보려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 남은 잔치가 몇 번이나 될까요. 환갑도, 칠순도, 팔순도 거르는 세상에서, 우리 세대가 살아가며 마주할 '잔치할 일'은 셈해볼수록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등포문화재단이 지원하는 300만원의 예산으로, 명분을 새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찾아보니 잔치를 열 그럴듯한 명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마흔이 되는 친구 세 사람을 모아 '불혹(不惑) 잔치'를 열기로 했습니다. "고작 마흔 살 살아놓고 무슨 잔치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되묻고 싶습니다 — 우리에게 앞으로 잔치할 일이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300만원은 축제를 벌이기엔 적은 돈이지만, 잔치를 벌이기엔 꼭 맞는 돈입니다. 우리는 이 돈으로 큰 명분이 아니라, 오늘을 축하할 이유 하나를 사려 합니다.
잔치의 이름은 불혹 잔치이며, 올해 마흔이 되는 친구 3인을 위해 영등포문화재단이 제공하는 공간에서 3,000,000원의 예산으로 열립니다. 대감마님처럼 한복을 갖춰 입은 전통 잔치의 형식을 빌리되, 그 안을 오늘의 우리로 채우려 합니다. 국악을 하는 음악가를 모셔 잔치의 흥과 격을 살리고, 전문 사진사를 섭외해 잔치의 장면을 기록하며, 아티스트가 함께해 현장을 감각적으로 완성합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주인공이 한복을 갖춰 입고, 다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는 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잔치에는 원래 마땅한 명분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명분은 잔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중에 붙는 이름일 뿐, 잔치의 본질은 함께 즐겁게 놀고, 먹고, 마시고, 축하하는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을 통해 "경사(慶事)를 나눈다"는 잔치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오늘을 축하할 이유는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잔치가 증명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잔치를 '허례허식'이라 여기게 되었을까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지금도 결혼식과 장례식에 몇 주씩 시간을 들이고, 적잖은 비용을 씁니다. 우리는 그런 풍속을 사치를 조장하는 구태의연한 관습이라 부르며 경계해왔습니다. 효율과 실용이 미덕이 된 시대에, 며칠씩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은 낭비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허례(虛禮)와 허식(虛飾)이라는 말 속의 '허(虛)'는, 정말 비어 있는 것일까요. 형식에 공들이는 일, 경사를 크게 소리 내어 축하하는 일에는 그 나름의 효능이 있습니다. 관계를 다지고, 기억을 새기고,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하루로 밀어 올리는 힘입니다. 우리가 '허례허식'이라 부르며 지워온 것은 사치가 아니라, 어쩌면 서로를 축하하는 능력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번 잔치를 통해 그 효능을 다시 시험해보려 합니다. 우리 삶에 몇 번 남지 않은 경사를, 아끼지 않고 기념하는 일. 그것이 이 잔치가 걸어보는 실험입니다.
이 잔치를 통해 우리는 사라져가는 잔치 문화를 환기하고, 명분 없이도 서로의 삶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려 합니다. 나아가 지역 문화재단 지원 사업이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고, 한복과 국악이라는 전통의 형식 안에 또래 친구 간의 자발적인 축하라는 동시대적 관계를 담아보려 합니다.
박상현 님
[아이디어 스케치]
주제 : 무목적의 목적
→ 목적없이 지나치다 엮이게 되는 목적들
나는 잔치를 왜 하고 싶은 걸까?
잔치라는 단어가 나와서? 아니다. 그냥 나는 잔치 같은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잔치는 무엇이지?
*잔치란? 생일, 혼인, 승진 같은 경사를 축하하거나 사람들을 환영하고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여럿이 모여 즐기는 일
무슨 경사가 있길래?
어떻게 환영하고 싶길래?
그렇게나 축하할 일인가?
배부른 음식? 다같이 나눠먹는 음식?
무엇을 하면서 즐기고 싶길래?
근데, 이런 이유가 있어야 잔치를 하는걸까?
그냥 잔치라는 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이유가 꼭 있어야 해?
내가 사는 동네에 그냥 하나쯤 동네잔치가 있으면 좋잖아 안그래?
“나 오늘 경사났어! 잔치하자!”
“뭔 경사길래?”
“그냥 오늘 길가다 돈 주웠지! 그게 경사지!”
“오늘 잔치 있는데 올래?말래?”
[아이디어 상상]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북소리가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허이~~ 으챠~~ 신난다~ 쿵 쿵 쿵 쿵”
사람들은 영혼이 끌려가듯 소리가 나는 곳에 모이고 있다.
그곳에는 이상한 잔치가 요상하게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 돈을 주웠다고 경사라며 소리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불혹의 나이에 불혹을 벗어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누군가는 정신없이 부침만 뒤집고 있었다.
‘뭐야, 이 잔치는...’
‘구경좀 하고 갈까?’
어느새 나는 길가다 돈주은 사람을 축하해주고 있었고,
불혹나이의 사람들을 위로해주며
차려진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며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즐기고 있었다.
blah blah